[소설-일반]깊이에의 강요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첼시
파트리크 쥐스킨트(독일, 1949년생).
가느다란 머리카락, 한결같이 입고 다니는 낡은 스웨터. 눈에 띄지 않는 외모가 작품에서 묻어나오는 강박증과 내성적인 수줍음을 대변하는듯 하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되게 그의 서술기법은 치밀하면서도 감각적이다. 그의 작품 중 상당수는 극도의 집착, 치우치고 비뚤어진 감정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자극적인 소재로 눈살을 찌푸릴 일이 없는 것은 개연성 있는 줄거리의 전개, 그리고 작품 속의 섬세한 묘사와 동화적인 표현 방식 덕분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화사하면서도 음울하고, 불쾌감을 유발하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언제고 파트리크 쥐스킨트라고 대답할 수 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와 그의 작품에 대한 기록들
→2013/11/03 - [책] - [작가]찝찝이 시리즈 1탄 파트리크 쥐스킨트
2013/11/07 - [책] - [소설]좀머 씨 이야기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2014/01/11 - [책] - [소설]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위의 사진은 <승부>의 한 대목. 단편집은 모두 네 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있다.
소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마지막으로 에세이 <문학적 건망증>의 순서이다.
<깊이에의 강요>
이 소설은 전시회에서 한 평론가에게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깊이'에 집착하다 결국 자살하는 여류 화가의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에 '깊이'가 없음을 한탄하며 습작은 커녕, 줄 하나도 제대로 긋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깊이를 더하기 위해 철학책을 읽어보려 시도하고, 위대한 명작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은 깊이 있는 작품을 그릴 수 없음에 망연자실해진 그녀는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녀에게 깊이가 없다고 평했던 그 평론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또다시 단평을 기고하는데, 그 글은 그녀에게 깊이가 없다고 평론했던 처음의 글처럼 원인을 그녀 내면에 돌리는 내용이었다. 대여섯 페이지의 짧은 초단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승부>
일흔 가량 된 '장'이라는 체스 고수와 한 젊은이가 벌이는 대결에 관한 이야기다. 그 동안 장에게 패배한 사람들, 지인들, 그냥 지나가던 구경꾼들까지 합세해 이 낯모르는 젊은이를 응원한다. 이제는 세력의 판도가 바뀌기를, 이 청년이 흑기사처럼 나타나 장을 당당히 쓰러뜨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과연 청년은 승부를 대담하게 이끌어나가고, 태연한 척하던 '장' 역시 허를 찌르는 그의 공격에 긴장하고 만다. 그러나 체스를 마칠 때 쯤 결국 장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그 젊은이는 그저 체스 초보였음을 모두들 깨닫게 된다. 품고 있는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들. 나의 생각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닐 수가 있다. 위에 쓴 <깊이에의 강요>와 비교해가며 읽으면 더 재미있다.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보석세공 장인 뮈사르가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유언이 그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뮈사르의 어조는 진지하며, 때때로 격앙되어 있으나, 독자들은 그의 유언을 듣고 실소를 머금을지도 모른다. 그는 이 세계의 대부분이 조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부분도 조개화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돌조개는 생명에 적대적인 원소이며, 우리의 가장 사악한 적이고, 우리의 육신마저 조개로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세계의 종말은 이 지구가 완전히 조개화가 되는 날, 거대한 조개가 인류를 덮치며 닥쳐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돌조개化'를 '인간성의 상실'로 받아들이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뮈사르의 유언은 감수성을 잃고 비인간적으로 변해가는 인간들이 '조개화'가 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문학적 건망증>
이 작품은 에세이다. 단편 소설인 줄 알았더니 그냥 단편 에세이인 듯. 에세이 속에서 쥐스킨트는, 그가 작가로서 느끼는 문학의 의의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장장 30년 동안 글을 읽어왔지만, 그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어떤 소설 2권에서 누군가 권총자살한다는 내용 뿐이다. 작품을 제대로 인용하기는 커녕, 보들레르를 쇼팽과, 조르주 상드를 스탈 부인과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는, 문학작품이 과연 인간에게 잊지 못할만한 예술적 체험을 선사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나 역시도 끊임없이 책을 읽고 있지만 책을 내려놓는 그 순간 상당 부분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증발하고 만다. 학부 시절, 존경하던 교수님께서 '작품 속 구절을 정확하게 암기하는 것은 대단히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렇다더라 하면서 대충 얼버무리는게 아니라 그 구절을 정확히 인용하는 것이 백 마디 부연 설명보다도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의미로 해주신 말씀이었다. 시나 소설의 인상적인 문장 한 구절을 외울 수는 있겠지만 모든 작품에 손을 뻗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렇게 읽은 감상을 기록해두려 한다. 5년 뒤, 10년 뒤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기억을 빌릴 수 있도록.
이번 글의 작가 소개 및 <깊이에의 강요>, <승부> 감상문은 재작년 11월 3일에 썼던 내 블로그 글에서 빌려왔다.
비문과 새로 읽으면서 달라진 감상 등 일부만 수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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